Y는 2005년 쯤 여자친구 T를 소개해주었다. 그 후 ‘엄마’라고 부르라며 관계를 유지했으나, ‘돈이 없다’, ‘직업안정 준비가 안되었다(당시 Y는 중고등생 영어공부방을 운영했으나 수완이 없고 생업에 적극적이지 않은 성품이라 그달 벌어 그달 먹고 사는 수준이었다-그럼에도 대중교통 45분 거리의 공부방에 출퇴근용으로 자가용을 끌고 다녔고, ‘폐차할 때까지 타는 검소함’이라고 본인을 칭찬하며 다녔다)는 이유로 2005년부터 2023년까지 18년이란 세월을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동거도 하지 않으며, 교회나 본인의 자영업장 등 사회활동 필요시에만 ‘아내’로 소개하였다. 이는 T역시 전적으로 동조한 것으로, T는 장기임대주택을 배정받아 서울 홍대부근 아파트에서 방2개 아파트에 혼자 살았는데, 자신이 여자친구 수준의 대접을 받는다는 것에 자존심 상해 하면서도 자신의 안정적인 주거의 이점을 적극 활용만 할 뿐이었다).

‘부녀’라는 이유로 Y의 일방적인 감정 쓰레기통 관계를 자각하고 직접 갈등을 드러낸 건 2021년 1월 계모 T의 치부를 Y가 나에게 하소연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 계기다. T는 1965년생 서울 출신 여자로, 화목한 가정 5남매의 막내였고, 전남편 사이에 1993년생 아들이 있으나 전남편이 친권을 가져가 위에 설명한 것처럼 홍대 부근 장기임대주택 아파트에 혼자사는 형편이었다. 화려한 외모와 패션 관련 사업 경험이 있으나 부도가 났고, Y와 만나던 2005년 즈음에는 피부관리사로 일하고 있었다.

Y가 2021년에 내게 하소연 하던 내용이란 이렇다: T는 명품을 좋아하고 소비를 통제하지 못하는 낭비벽이 심한 여자라 몇년전부터 헤어지고 싶었으나 불쌍해서 데리고 있는다는거다.
나는 당시 T와 관계가 매우 좋았다(나에게는 생모의 기억이 없기에 계모를 비교할 대상이 없었고, 애초에 어른 여성에 대한 동경과 알수없는 그리움이 있었다. 그리하여 T의 낭비벽 성향을 진작에 감지는 했으나 내 생에 드디어 나타난 ‘엄마’의 존재를 다시 몰아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가족’이니 단점도 안고 가야한다고 생각한 내 나름의 책임감이었다).T의 낭비벽은 어느정도 예상하던 치부였음에도 직접 Y에게 들었을때는 낭비의 수준이 그정도일 줄 몰랐기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나는 몇년전 면세점 명품 관련 업무를 하며 명품 가방 브랜드 종류를 꽤 알게되었는데, T의 집에 갔던 날 집은 허름하지만 옷방 구석구석 명품 의류와 가방, 악세서리와 구겨진 케이스 쇼핑백 들을 보며 많이 놀랐었고, 그 모양도 무난하기 보다는 포인트 장식이 달린 것이 많아 명품애정도가 일반인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게 기억이 나며 그간 T가 묘한 태도를 취하여 이해가 안가던 모습들이 아귀가 맞았다.
하지만 그날 내가 Y에게 대노하여 생애 처음으로 직접 갈등을 드러낸 이유는 ‘T의 낭비벽’이 아니었다. Y의 그 태도, ’헤어지고는 싶은데 불쌍해서 데리고 있는다‘며 사회활동 시 필요할 때는 쇼윈도부부처럼 사용하다가, 기분이 내키면 아주 하대하고(나는 Y가 손님이 있는 앞에서 T를 마치 몸종 부리듯 하대하고 빈정대는 모습을 많이 보아 매우 스트레스 받았다), 스스로를 ’멍청한 여자 버리지 못하고 품는 불쌍한 남자’로 여기는 그 마음가짐에 아주 소름이 끼쳐버린 것이다.

그 후 상황은 이렇다. 나는 처음으로 쌍욕을 퍼부으며
’남편소리 들으면서 필요할 때는 아내로 써먹다가 귀찮을 때는 하대하는 너같은 새끼는 가정을 꾸릴 능력도 자격도 없다’며 호통을 쳤고, Y는 내 쌍욕을 이유로 T의 뒤에 숨었다-나에게 T의 치부를 하소연해서 발생한 일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은 채. T는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여 약 1년을 상황 전후도 모른 채 나를 혼자 살라고 쫓아내며 “1)정신과 치료를 받고 2)자기 친구인 목사에게 가서 기도하고 은혜받으라”고 요구했다.
나는 T의 지시와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 그러나 요구는 점점 늘어갔다. 혼자 살라고 내몰아놓고, 자립할 준비를 해 정말 집계약을 하고 오자 ”생각이 바뀌었어, Y와 관계 회복도 할 겸 같이 살자. 나 이제 너랑 같이 살 수 있어“.
그날 나는 T와 Y를 손절했다.

손절한 기간 내내 Y로부터 각종 후버링이 들어왔다.
끊임없이 주변인물을 통해 나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고,
초본을 떼서 내 자취집 주소를 추적해 찾아오거나
’너한테 필요한거야‘라며 물건을 보냈고,
직장에 전화했고,
은행계좌에 1천원씩 보내며 ’메모‘란에 8글자씩 수십개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야말로 변태 스토커였다.

Y의 논리는 매번 똑같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너에게 언젠가 꼭 도움이 될거야. 믿어봐.

Y에게 시달리는 동안 나는 온몸이 말그대로 망가젔다. 피부병, 산부인과질환, 심장판막 기능장애, 정서장애-신경과민과 수면장애는 당연하다.

“이거봐 너 이거 필요하잖아. 이것만 너 줄게 한번만 내 말 들어봐.”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절대 안정이었다. 직장에까지 전화한 날 호신용분무기를 샀다.

“세상에서 그래도 너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빠밖에 없어.”


Y는 2014년 즈음 T와 지방에서 동거하며 아이를 낳을 계획이었다는 걸 2021년에 우연히 알았다. 당시 Y는 공부할 것이 있어 지방 대학교에 다니며 자취하고 있었고, 20대 대학생이던 나는 친조모와 고모의 집에 얹혀살며  또다른 방식의 학대에 시달려 정신이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Y에게 제발 도와달라고 수차례 애원했었으나(결국 내힘으로 월30짜리 고시원에 갔다) Y는 전혀 못알아들었다.
Y는 살면서 한번도 나를 위해 희생하지 않았다.
금전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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