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전염병이다 -「한산」2022, Korea
오랜만에 역사물 영화를 보았다.
'명량(2014)' 때 이미 예고되었던 이순신 장군님 대첩시리즈, 한산. 최근에는 OTT가 워낙 잘되어있다보니 극장에 대한 관심이 뚝떨어져서 최신개봉영화도 흘깃, 뜬다는 영화도 힐끗 보고 말았는데, 한산은 보자마자, 그리고 주연이 박해일님이라는 것을 알자마자(ㅇㅅㅇ) 평점을 따질 겨를 없이 예매하기로 마음먹었다.
러닝타임 129분임에도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주연부터 조연까지 배우진이 쟁쟁해 인물 등장때마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덕도 있지만, 가뜩이나 과묵한 이순신 장군님(박해일)에 비해 잔뜩 독기오른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 및 ETC의 일본어가 더많이 들리는 바람에, 왠지 열이 받아서 더 집중해 본 탓도 있다.
마침내는 이노무 왜구들 시원-하게 후드려패주시는 사이다 결말까지 ! 심야영화로 보고 나왔는데 귀가길이 아주 맛깔났다. 호호.
'승부의 승자는 두려움은 덮고 기술을 캐는 자'라는 것은 왜구에게나 조선에게나, 오늘날의 현대인까지도 모두 적용되는 원리라고 생각한다. 멋진 명대사로 '의와 불의의 싸움'이 나오지만 안타깝게도 의와 승리가 정비례하지 않고, 알고보니 내가 '의'쪽이 아닌 경우도 있다. 현대의 삶에서는 성실과 자본축적이 연동되는 것은 아니며 내 나름의 성실이 사실은 불필요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되겠다.
그러니 어찌보면 '두려움을 덮는' 것은 승리를 위한, 성공을 향한 요소라기보단 기본 전제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감정이라 이성적 의지로 통제가 되기도, 안되기도 한다('병'이라고 한 것은 이런 특성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이순신 장군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왜구를 시원하게 후드려패신 것도 넘나 멋지지만, 병적인 감정을 주변 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조용히 통제하신 그 근성에 있다. 난중일기를 약간 들여다본 적 있는데 내용의 절반이 '오늘도 화살을 쏘았다'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원균이 빡치게 하나 선조가 빡치게 하나, 수세이든 열세이든 간에 화살을 쏘았다. 그의 비범함은 타고난 영웅적 기질보단 매일 쏜 화살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의 화살은 기록이다(참 흔하고 평이한 화살인데 이걸 찾아 헤매는데 상당한 시간을 쏟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의 화살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살기도 십상인데 찾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다). 대단한 기록은 아니지만 시간기록, 돈기록 따위의 신변잡기적 기록을 하다보면 머리를 웽웽 울리는 소리들이 가라앉는다.
다행히 왜구는 당분간 없다. 이렇게 당분간의 미래에도 없다는 사실, 임진왜란 때 조선백성이 들으면 얼마나 부러워 탄복할 일인가 !
그러니 감사하자.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의 화살을 여기저기 적어보자.